본문 바로가기

카테고리 없음

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.

며칠 글 쓰는 것을 빼먹었다. '일주일 내내 쓰는건 너무 힘들꺼야, 주말에는 쉬어야지 그치? 쉬는 날이 있어야 충전이 되서 또 쓰지, 주말에는 평일 5일치 분량을 퇴고하는 시간을 갖는거야.' 이렇게 작은 변명들을 늘어놓으며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. 그리하야 4일 쓰고 5일 쉬는 대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. 하하...

지금 재미있게 읽고 있는 (물론 이마저도 4일차에서 멈췄습니다만...) [아주 작은 습관의 힘]에서도 말한다. 어떤 일이 숙련되기까지는 '인내심'이 필요하다고. 한 순간에 변화를 맞는 일이란 없다. 매일의 작은 실천이 쌓이면 그 결과로서 변화가 오는 것이라고. 하지만 4일치 글을 쓰면서 '쓰는 삶'으로서의 행위가 아닌, '잘 쓰는 것' 결과에 집중하니, 괜한 '완성도'를 핑계로 글 쓰는 것을 멈추었다. 작은 변명을 우습게 여기지 말자던 나의 다짐이 그 실체를 보여준 것이다. 하루의 작은 변명이 그 다음날에도, 그 다음다음날에도 이어져 글을 쓴 날(4일치)보다 안 쓴날(5일치)가 더 많아진 것이다.

나의 글에는 다짐만 있고, 논리가 없다는 생각이다. 근데 그 논리를 도대체 어떻게 키울 수 있는건지, 나만의 생각을 어떻게 세우는 건지, 세울 수는 있는 건지 막막한 마음이다. 그래서 김민식PD님 블로그의 첫 글을 찾아보았다. 지금 이렇게 '매일 한편씩 글쓰기'를 행하게 해준 사람의 처음을 말이다. 2011년의 글이었다. 9년전 그의 시작.

몇 편 읽은 것일 뿐이지만, 오늘날 한겨레에 칼럼을 기고하는 김민식PD의 글과는 엄연한 차이를 보인다. 그가 갖고 있는 기본 정서는 9년전 글에서도 비슷하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, 자신만의 생각을 말하는 방식은 확실히 달라졌다.

9년이란 시간을 꾸준히 글을 쓰고, 책을 읽으면서 그는 자신만의 문체, 생각을 만들어갔다. 비단 김민식PD님의 글 뿐만 아니라,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'왜 나는 이런 논리, 나만의 생각, 주장이 들어가는 글을 쓰지 못하는걸까' 자괴감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펜대를 놓아서는 안되는구나.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음을, 그 처음의 부끄러움을 참고, 더딘 성장의 시간을 견뎌내고 나면, 분명 내게 작아도 '나만의 결과물'이 만들어지겠구나.

솔직히 내 블로그에만 쓰는 것이지만, 김민식PD님의 글은 필력이 엄청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.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, 그의 글이 가진 힘이 엄청나다. 글이 정말 쉽게, 재미있게 읽힌다.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같은 쉬운 문장인데 결코 쓰기란 쉽지 않은. 그런 그의 처음도 나랑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. 물론 독서량은 나와 엄청 차이가나겠지만. 그건 개개인이 가진 차이이고, 개성이니 하나하나 걸고 넘어지면 내 자존감만 깍아먹으리.

다시, 그의 처음을 보자. 9년 전이다. 내가 글을 쓰기로 했던 건 21살,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의 다짐이었다. 지난 9년 글을 썼더라면 오늘 김민식 PD님처럼 나만의 생각과, 스타일을 가질 수 있었을거다.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. 쓰자, 매일 쓰자. 처음의 부끄러움에 주저앉아 9년 뒤, 다시 처음을 외치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자.

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.